전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한국 산업화의 성과를
마치 일본의 선의와 도움 덕분이었던 것처럼
설명하는 글에 먼저 놀랐습니다.
역사를 그렇게 단순화하면 안 됩니다.
포항제철 건설 과정에서
일본 자금과 일본 기업의 기술협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한국 산업화 전체가
일본의 시혜였다는 뜻으로 읽히면 안됩니다.
한국의 산업화는 한국 노동자, 기술자, 기업인, 관료, 국민이
가난과 독재,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일본의 자금과 기술협력은 그 과정의 한 요소였을 뿐,
한국의 성취 전체를 일본의 공로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 논리라면 한국의 성공은 한국인의 성취가 아니라
일본이 만들어준 결과라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역사 분석이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론의 다른 변형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협력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은 충분히 정리되었다”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도 끝났다”
“한국인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라는 결론으로 가는 것은 명백한 비약입니다.
먼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돈은
협정문상 ‘식민지배 배상금’이 아닙니다.
협정의 이름부터
‘재산 및 청구권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입니다.
즉,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한 구조가 아니라,
국가 간 재산·청구권 문제와 경제협력을 묶어 처리한 정치적 합의였습니다.
무상 3억 달러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유상 2억 달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상 2억 달러는 한국이 갚아야 하는 차관입니다.
빌려준 돈을 배상처럼 말하는 것부터 개념이 틀렸습니다.
포항제철에 청구권 자금 약 1억 2천만 달러가 들어간 것도 사실입니다.
그 돈과 일본 기술협력이 한국 산업화의 한 요소였던 것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를 소멸시키지는 않습니다.
포항제철이 성장했다고 해서
일본 제국의 식민지배 책임이 POSCO로 이전되는 것도 아닙니다.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할 주체는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국가와 기업입니다.
수혜 기업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해 책임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POSCO 지분 1%를 피해자에게 주면 된다”는 말은
일본의 책임을 한국 기업의 책임으로 바꾸려는 주장일 뿐입니다.
님은 일본이 돈을 그냥 준게 아니라 빌려준거고, 한국은 이를 이자까지 쳐서 갚았다고 하는데, 한국인으로서 그 당시 일본정부가 수억달러라는 돈을 빌려준 사실 자체를 평가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70년대 한국이 제철소 짓는다고 할 때 미국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이 돈을 빌려주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징어, 가발 수출하던 나라가 종합제철소를 짓는다는데 실패할 게 분명하니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겁니다.
일본어에 능통하던 당시 한국의 기업인, 관료들이 일본으로 백방으로 뛰며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야스오카, 이나야마 같은 일본의 유력인사는 '과거를 반성하고 한국을 돕는 것이 일본의 국익(國益)'이라는 한국관(觀)을 갖고 있었고 당시 한국의 근대화의지에 일부 일본 유력인사들의 성의가 더해져 일본의 제철소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었던(실제로 그렇게 된) 포항종합제철소 건설을 돕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자금이 원래 농림수산 부문에 쓰기로 되어 있던 청구권 자금이었는데, 한국 측의 요청으로 제철소 건설에 전용하는 것을 일본 측이 동의해줬다는 점입니다. 자국 산업의 경쟁자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도, 과거를 반성하고 한국을 돕자는 일본의 유력인사들이 도와준겁니다. 다른 선진국처럼 일본도 한국을 외면했다면 제철소도, 조선소도, 반도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스스로 제철소 지을 때 조상들이 식민지배에서 받은 피해에 대한 보상금으로 이 제철소를 지어서 후손을 잘 살게 하자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항제철 지을 때 임직원들이 이거 '조상의 핏값'으로 짓는거니 실패하면 전원이 바다에 빠져 죽자는 각오로 지었구요. 그 결과 이만큼 성공했고, 이만큼 잘 살게 되었으면, 포스코 지분 1%라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분하면 될 일입니다. 그게 '조상의 핏값'으로 시작한 기업이 후손에게 진 도리입니다.
님이 자꾸 일본이 준 돈은 배상이 아니다, 빌려준거다 주장하는데, 님이 정작 주장해야하는 것은 식민지 모국이 식민지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을 한 다른 사례가 있는가 부터 제시해야합니다. 사과하고 배상하면 좋겠죠. 그런데 배상금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책정해야합니까? 독일은 폴란드 침공해서 그 나라 국민을 6년간 22%를 죽였습니다. 배상 한 푼이라도 했나요?
제 할아버지가 태평양 전쟁 말기에 강제징집되서 미얀마 전선으로 파병되기 2주 전에 전쟁이 끝나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요(먼저 파병된 조선인 소대40명 중 3명인가가 살아돌아왔습니다). 징집을 피하려고 숨어있었는데 일본순사가 와서 미성년자 동생을 끌고간다 협박당해서 결국 군대에 갔죠.
그러니 저로서도 "조선인이 원해서 황군에 자원했다" 라던지,
60년대 한국 국민소득이 80달러였는데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삼아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을 하는 넷우익을 보면 한심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70년대 제철소를 지을 때 설계도를 통째로 보여준 일본기업도 있고, 25년 전부터 한류스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준 일본인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마움을 표 할만 하며, 님처럼 쉴새없이 일부 일본인들의 역사관을 훈계만 한다면 오히려 반감만 키우고 넷우익만 증가시킬 뿐입니다.
기적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입니다. 대승적이고 관대한 관점을 가지십시오. 이미 예전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친한이 되고 있고 일본문화에 친숙함을 느끼는 한국인들이 많아졌습니다. 님은 원한에 사로잡혀 비생산적인 논의만 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피해배상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나라의 사례와 구체적인 배상금 책정액을 제시하고,
‘일본인의 과거사 직시’를 원하는 것이라면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그들의 양심에 맡기십시오.
그리고 님부터 이미 70년대 한국의 근대화를 선의로 도와줬던 일본인들도 있었다는 점도 상기하고 그 점에 대해서라도 고마움을 표하십시오. 그렇게 과거사를 통합적으로 직시할 때 한국에 일본인들은 더 늘어나고 한일관계는 더 발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