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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문헌 기준으로 정리하면 간단합니다. UN 안보리 결의 82호, 미국 National Archives, Truman Library, Britannica, Stanford 자료 모두 한국전쟁의 직접 개시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설명합니다. 물론 배경에는 일제 식민지배의 유산, 해방 후 미·소 분할 점령, 남북 정권의 대립, 국경 충돌이 있었습니다. 이승만도 강경한 반공·북진통일론자였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국전쟁을 “이승만이 대마도를 침략하려다 실패해서 생긴 전쟁”처럼 설명하는 외국 주류 문헌은 찾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아시아역사자료센터와 외무성 관련 자료조차 한국전쟁을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공해 시작된 전쟁으로 정리합니다. 그러니 저 주장은 한국의 역사교육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문헌과 일본 공식 자료에서조차 벗어난 일부 일본 극우식 역사 재창작에 가깝습니다. <<외국 문헌 보도 참고 자료>> 1. UN 안보리 결의 82호 1950년 6월 25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군에 의한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명시했고, 북한 당국에 38선 이북으로 철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2. 미국 National Archives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 여러 지점에서 조직적으로 공격해 서울 방향으로 남하했고, 유엔 안보리가 이를 “평화의 파괴”로 규정했다고 설명합니다. 3. Truman Library 트루먼 대통령의 1950년 6월 27일 성명도 한국 정부군이 “북한의 침공군에게 공격받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4. Britannica 브리태니커는 한국전쟁을 “북한이 소련의 지원과 조언을 받아 남한을 침공하면서 국제전으로 확대된 전쟁”으로 설명합니다. 동시에 전쟁의 배경에는 일본 제국 붕괴 이후의 한반도 분단이 있었다고 정리합니다. 5. Stanford SPICE 스탠퍼드 자료는 일제 식민지배의 유산, 미·소 분할 점령, 남북 정권 수립, 이승만과 김일성 모두의 통일 지향, 1948~1950년 국경 충돌을 배경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전쟁 개시 자체는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남하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한 것으로 정리합니다. 6.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이 자료는 남한 쪽 일부 장교들의 북진성 국경 충돌도 언급하며 배경을 복잡하게 봅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의 본격 전쟁은 북한군이 남한 정복을 목표로 군사 공세를 시작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7. 일본 자료조차 다르게 말하지 않음 일본 아시아역사자료센터도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공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고 설명합니다. 일본 외무성 관련 자료에서도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한국 영토에 침공했고, 이에 안보리가 결의 82호를 채택했다”고 정리합니다. 일본 방위연구소 자료도 전쟁 초반을 “기계화된 북한군이 중장비가 부족한 한국군을 기습해 압도했다”고 설명합니다.
Replying to @LifeBeLikeThatX
という事で、実例。 朝鮮戦争は、 李承晩が対馬を侵略しようとして、南方に軍事力を偏在させ、「軍事的空白地域を北側に作る」という失敗によって発生したもの。 これは、ほぼ全ての国での共通認識ですが、韓国ではどのように教育されていま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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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only one reason why I delete some comments from a small number of Japanese users on my posts. Because their claims are not opinions. They are fake news, close to historical delusion. That version of history may work inside certain circles in Japan, but it does not exist anywhere on Earth outside Japan. The rest of the world does not share that fantasy. If you want to debate history, bring facts, documents, and internationally accepted scholarship. But if all you bring is denial, distortion, and nationalist fiction, I have no obligation to give it space under my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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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version of history may be accepted inside Japan, but outside Japan, it simply does not exist. There is only one reason why I delete your posts. They are fake news. That version of history may work inside Japan, but it does not exist anywhere on Earth outside Japan.
Replying to @LifeBeLikeThatX
まずは自省せよ。 35年間育てた末に不如意とはいえ未熟のまま放り出した事のみが慰謝の根拠。日本人の情に基づくもの。 収奪・搾取も制度的差別も無い。 強制動員による損害も無い。 朝鮮人は長く徴兵猶予され、志願兵制度から始まった。内地日本人と同等以上に守られた。 戦場にされた損害も無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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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은 애초에 전쟁배상금도 아닙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돈은 협정문상 ‘배상’이 아니라 경제협력과 청구권 문제 해결의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쪽 주장처럼 그 돈을 전부 ‘배상금’이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당시 한국 인구 약 2,928만 명 기준으로 계산하면, 무상 3억 달러는 1인당 약 10달러입니다. 가장 일본 측에 유리하게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까지 모두 합쳐도 1인당 약 17달러입니다. 게다가 유상 2억 달러는 한국이 갚아야 하는 차관이었습니다. 35년 식민지배, 주권 박탈, 강제동원, 수탈, 인권침해, 수많은 죽음과 피해, 전 국민이 감당해야 했던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피해자의 고통은 1인당 10달러짜리 계산서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본인들은 납득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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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방지용 말뚝 하나 박아둡니다. 피해자 개인이 받아본 적도 없는 1인당 10달러. 유상차관까지 억지로 배상처럼 넣어도 1인당 17달러입니다. 이걸로 35년 식민지배와 강제동원 문제가 끝났다고요? 소가 웃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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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면 사망각 태권도 발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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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계속 한국과 베트남 이야기를 꺼내니, 오히려 분명히 말해두겠습니다. 한국은 베트남전과 관련해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여러 차례 유감과 사과의 뜻을 밝혀 왔습니다. 또한 한국과 베트남은 지금도 우호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삼성과 LG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많은 고용을 만들어 왔습니다.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미래의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거를 지우지 않고 마주하면서도, 미래 관계를 만들어 갈 의지가 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それでしたら韓国はベトナムに謝罪し続けるのでしょうか? ライダイハンの問題も公式に認めず謝罪もされてないようです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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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문제를 언급하시는 일부 일본인들을 위해 정리해 드립니다. 한국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이 문제를 자신들의 제국주의 범죄를 흐리는 도구로 쓴다면, 그건 반성이 아니라 물타기입니다. x.com/LifeBeLikeThatX/status…

먼저 그런식으로 대응을 하시니, 그럼 알려드리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대표적인 만행은 1944~1945년 베트남 대기근입니다. 당시 일본 제국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한 뒤, 전쟁 수행에 필요한 식량과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의 쌀과 농산물을 가혹하게 수탈했습니다. 그 결과 베트남 북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고, 사망자는 약 10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거론됩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군은 베트남 농민들에게 쌀을 강제로 공출하게 했고, 논을 갈아엎어 피마자, 면화, 황마 같은 군수용 작물을 재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수탈된 쌀은 일본군의 군량미와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로 사용되었고, 정작 베트남 민중은 먹을 식량을 잃었습니다. 또한 일본군은 항일 독립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베트민과 민간인들을 고문, 처형, 학살했습니다. 1945년 3월에는 프랑스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 군인과 관료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희생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소 운영과 전시 성폭력 문제 역시 베트남에서 제기되는 일본군의 전쟁범죄 중 하나입니다. 결국 일본은 베트남에서 식량 수탈, 강제 작물 전환, 군사 탄압, 전시 성폭력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러면서도 훗날 베트남전 당시에는 미군에 군수품과 보급 물자를 판매하며 막대한 전쟁 특수까지 누렸습니다. 따라서 일본 극우가 한국의 베트남전 문제를 꺼내 드는 것은 베트남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책임을 흐리기 위한 물타기에 가깝습니다. 베트남을 말하고 싶다면, 일본은 먼저 자신들이 베트남에 남긴 상처부터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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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런식으로 대응을 하시니, 그럼 알려드리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대표적인 만행은 1944~1945년 베트남 대기근입니다. 당시 일본 제국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한 뒤, 전쟁 수행에 필요한 식량과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의 쌀과 농산물을 가혹하게 수탈했습니다. 그 결과 베트남 북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고, 사망자는 약 10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거론됩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군은 베트남 농민들에게 쌀을 강제로 공출하게 했고, 논을 갈아엎어 피마자, 면화, 황마 같은 군수용 작물을 재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수탈된 쌀은 일본군의 군량미와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로 사용되었고, 정작 베트남 민중은 먹을 식량을 잃었습니다. 또한 일본군은 항일 독립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베트민과 민간인들을 고문, 처형, 학살했습니다. 1945년 3월에는 프랑스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 군인과 관료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희생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소 운영과 전시 성폭력 문제 역시 베트남에서 제기되는 일본군의 전쟁범죄 중 하나입니다. 결국 일본은 베트남에서 식량 수탈, 강제 작물 전환, 군사 탄압, 전시 성폭력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러면서도 훗날 베트남전 당시에는 미군에 군수품과 보급 물자를 판매하며 막대한 전쟁 특수까지 누렸습니다. 따라서 일본 극우가 한국의 베트남전 문제를 꺼내 드는 것은 베트남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책임을 흐리기 위한 물타기에 가깝습니다. 베트남을 말하고 싶다면, 일본은 먼저 자신들이 베트남에 남긴 상처부터 말해야 합니다.
それでしたら韓国はベトナムに謝罪し続けるのでしょうか? ライダイハンの問題も公式に認めず謝罪もされてないようです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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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과 베트남 관계를 걱정하시다니 걱정해 주셔서 고마운데, 서로 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 x.com/LifeBeLikeThatX/status…

일본인들이 계속 한국과 베트남 이야기를 꺼내니, 오히려 분명히 말해두겠습니다. 한국은 베트남전과 관련해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여러 차례 유감과 사과의 뜻을 밝혀 왔습니다. 또한 한국과 베트남은 지금도 우호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삼성과 LG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많은 고용을 만들어 왔습니다.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미래의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거를 지우지 않고 마주하면서도, 미래 관계를 만들어 갈 의지가 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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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안보 협력과 과거사 문제를 일부러 섞는 전형적인 정치 선동입니다. 동맹이나 안보 협력이 중요하다고 해서 과거의 침략과 식민지배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논리라면 유럽은 EU도, NATO도 만들 수 없었어야 합니다. 독일이 프랑스 폴란드와 협력한다고 해서 나치의 전쟁 책임이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진짜 협력은 과거를 덮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인정하고, 책임을 분명히 한 뒤에 가능합니다. 중국과 북한을 끌어와서 일본의 역사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건 안보 논리가 아니라 역사 물타기입니다. 한미일 협력이 중요할수록 일본은 더더욱 과거사를 가볍게 다루면 안 됩니다.
그럼 중국,북한은 대한민국에 사과 했냐? 물론 일제강점기 역사는 아프고 잊으면 안되지만 지금 한,미,일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초를 치고 있을까..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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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주시는 한·일 관계 글들 잘 봤습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한 휴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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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에 군수 물자와 보급품을 팔며 막대한 전쟁 특수를 누렸습니다. 그 사실은 모른 척하면서 한국의 베트남전 문제만 꺼내 드는 것은 논리도 아니고 양심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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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rian Knox retweeted
Replying to @LifeBeLikeThatX
腐った日本のバカウヨは、 過去の犯罪を糊塗する為に、 馬鹿の一つ覚えみたいに これを持ち出してきます。 これが論理的に壊れている事も、 日本が軍事物資を米軍に売って、 ベトナム戦争でボロ儲けした事実も お構いなしに。 ネトウヨは人類の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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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한국 산업화의 성과를 마치 일본의 선의와 도움 덕분이었던 것처럼 설명하는 글에 먼저 놀랐습니다. 역사를 그렇게 단순화하면 안 됩니다. 포항제철 건설 과정에서 일본 자금과 일본 기업의 기술협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한국 산업화 전체가 일본의 시혜였다는 뜻으로 읽히면 안됩니다. 한국의 산업화는 한국 노동자, 기술자, 기업인, 관료, 국민이 가난과 독재,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일본의 자금과 기술협력은 그 과정의 한 요소였을 뿐, 한국의 성취 전체를 일본의 공로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 논리라면 한국의 성공은 한국인의 성취가 아니라 일본이 만들어준 결과라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역사 분석이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론의 다른 변형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협력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은 충분히 정리되었다”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도 끝났다” “한국인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라는 결론으로 가는 것은 명백한 비약입니다. 먼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돈은 협정문상 ‘식민지배 배상금’이 아닙니다. 협정의 이름부터 ‘재산 및 청구권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입니다. 즉,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한 구조가 아니라, 국가 간 재산·청구권 문제와 경제협력을 묶어 처리한 정치적 합의였습니다. 무상 3억 달러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유상 2억 달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상 2억 달러는 한국이 갚아야 하는 차관입니다. 빌려준 돈을 배상처럼 말하는 것부터 개념이 틀렸습니다. 포항제철에 청구권 자금 약 1억 2천만 달러가 들어간 것도 사실입니다. 그 돈과 일본 기술협력이 한국 산업화의 한 요소였던 것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를 소멸시키지는 않습니다. 포항제철이 성장했다고 해서 일본 제국의 식민지배 책임이 POSCO로 이전되는 것도 아닙니다.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할 주체는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국가와 기업입니다. 수혜 기업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해 책임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POSCO 지분 1%를 피해자에게 주면 된다”는 말은 일본의 책임을 한국 기업의 책임으로 바꾸려는 주장일 뿐입니다.
Replying to @LifeBeLikeThatX
님은 일본이 돈을 그냥 준게 아니라 빌려준거고, 한국은 이를 이자까지 쳐서 갚았다고 하는데, 한국인으로서 그 당시 일본정부가 수억달러라는 돈을 빌려준 사실 자체를 평가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70년대 한국이 제철소 짓는다고 할 때 미국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이 돈을 빌려주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징어, 가발 수출하던 나라가 종합제철소를 짓는다는데 실패할 게 분명하니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겁니다. 일본어에 능통하던 당시 한국의 기업인, 관료들이 일본으로 백방으로 뛰며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야스오카, 이나야마 같은 일본의 유력인사는 '과거를 반성하고 한국을 돕는 것이 일본의 국익(國益)'이라는 한국관(觀)을 갖고 있었고 당시 한국의 근대화의지에 일부 일본 유력인사들의 성의가 더해져 일본의 제철소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었던(실제로 그렇게 된) 포항종합제철소 건설을 돕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자금이 원래 농림수산 부문에 쓰기로 되어 있던 청구권 자금이었는데, 한국 측의 요청으로 제철소 건설에 전용하는 것을 일본 측이 동의해줬다는 점입니다. 자국 산업의 경쟁자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도, 과거를 반성하고 한국을 돕자는 일본의 유력인사들이 도와준겁니다. 다른 선진국처럼 일본도 한국을 외면했다면 제철소도, 조선소도, 반도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스스로 제철소 지을 때 조상들이 식민지배에서 받은 피해에 대한 보상금으로 이 제철소를 지어서 후손을 잘 살게 하자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항제철 지을 때 임직원들이 이거 '조상의 핏값'으로 짓는거니 실패하면 전원이 바다에 빠져 죽자는 각오로 지었구요. 그 결과 이만큼 성공했고, 이만큼 잘 살게 되었으면, 포스코 지분 1%라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분하면 될 일입니다. 그게 '조상의 핏값'으로 시작한 기업이 후손에게 진 도리입니다. 님이 자꾸 일본이 준 돈은 배상이 아니다, 빌려준거다 주장하는데, 님이 정작 주장해야하는 것은 식민지 모국이 식민지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을 한 다른 사례가 있는가 부터 제시해야합니다. 사과하고 배상하면 좋겠죠. 그런데 배상금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책정해야합니까? 독일은 폴란드 침공해서 그 나라 국민을 6년간 22%를 죽였습니다. 배상 한 푼이라도 했나요? 제 할아버지가 태평양 전쟁 말기에 강제징집되서 미얀마 전선으로 파병되기 2주 전에 전쟁이 끝나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요(먼저 파병된 조선인 소대40명 중 3명인가가 살아돌아왔습니다). 징집을 피하려고 숨어있었는데 일본순사가 와서 미성년자 동생을 끌고간다 협박당해서 결국 군대에 갔죠. 그러니 저로서도 "조선인이 원해서 황군에 자원했다" 라던지, 60년대 한국 국민소득이 80달러였는데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삼아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을 하는 넷우익을 보면 한심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70년대 제철소를 지을 때 설계도를 통째로 보여준 일본기업도 있고, 25년 전부터 한류스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준 일본인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마움을 표 할만 하며, 님처럼 쉴새없이 일부 일본인들의 역사관을 훈계만 한다면 오히려 반감만 키우고 넷우익만 증가시킬 뿐입니다. 기적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입니다. 대승적이고 관대한 관점을 가지십시오. 이미 예전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친한이 되고 있고 일본문화에 친숙함을 느끼는 한국인들이 많아졌습니다. 님은 원한에 사로잡혀 비생산적인 논의만 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피해배상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나라의 사례와 구체적인 배상금 책정액을 제시하고, ‘일본인의 과거사 직시’를 원하는 것이라면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그들의 양심에 맡기십시오. 그리고 님부터 이미 70년대 한국의 근대화를 선의로 도와줬던 일본인들도 있었다는 점도 상기하고 그 점에 대해서라도 고마움을 표하십시오. 그렇게 과거사를 통합적으로 직시할 때 한국에 일본인들은 더 늘어나고 한일관계는 더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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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당시 협정은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국민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피해자들이 충분히 설명을 듣고 동의한 합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일제 괴뢰국 만주국군 장교로 복무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군사정권이 일본과 맺은 합의를 근거로 “한국 국민도 동의했다”, “피해자 문제도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주장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민주적 공론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를 대변한 정부라기보다, 경제개발을 위해 청구권 자금을 국가 주도로 사용한 군사정권이었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로 한국 산업화가 진행되었다고 해서, 피해자 개인의 권리까지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돈을 받아 산업개발에 사용했다는 사실과 개별 피해자의 고통이 정당하게 해결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더구나 일본 측 주장대로 그 돈을 전부 배상금이라고 가정해도, 1965년 한국 인구 약 2,928만 명 기준으로 무상 3억 달러는 1인당 약 10달러입니다.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를 모두 합쳐도 1인당 약 17달러입니다. 그중 2억 달러는 갚아야 하는 차관이었습니다. 35년 식민지배, 주권 박탈, 강제동원, 수탈, 인권침해, 수많은 죽음과 피해를 1인당 10달러로 끝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역사 인식입니까? 일본에 고마워할 일이 있으면 고마워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 중 선의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그 또한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의가 있었다는 사실과 식민지배 책임이 사라졌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강도에게 물 한 잔을 받았다고 해서 강도가 집을 빼앗은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역사를 통합적으로 보자는 말은 좋습니다. 그러나 통합적 시각은 가해의 구조를 흐리는 것이 아니라 선의와 책임을 동시에 구분해서 보는 것입니다. 일본의 협력은 협력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 책임은 그대로 남습니다. 이 둘을 섞어서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것은 화해가 아니라 책임 회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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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입니다. 일본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좀 부족한다고 생각합니다.보고 십지 않아도 사실을 보고 다시 같은 일을 하지않도록 계속 반성 해야 됩디다.
저는 일본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히로시마, 요코하마 등 일본의 여러 도시를 다녀봤습니다. 고즈넉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돈된 도시와 마을들을 좋아했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라고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판하는 것은 일본인 전체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양심 없는 역사 왜곡입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정치가 원하는 방향에 국민 모두가 늘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의 과오와 시민 개개인의 선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화해는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더 나은 미래로 가길 바라기 때문에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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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い込みは自由ですが、比較は正確であるべきです。 日本は朝鮮に対して35年間、植民地支配を行いました。 主権を奪い、行政・教育・経済・労働・言語・名前・身体に至るまで支配しました。 その長い時間の中で、収奪、強制動員、人権侵害、文化の抹殺が国家体制として行われました。 一方、ベトナム戦争において韓国軍が参戦した期間は約9年です。 しかも、それは韓国が単独で起こした戦争ではなく、アメリカが主導した戦争体制の中での参戦でした。 戦争中に発生した民間人被害の問題と、 一つの国を35年間植民地として支配した問題を、 同じ天秤にかけること自体に無理があります。 戦争の性格も違い、 被害の規模も違い、 責任の所在も違います。 韓国がベトナム戦争の問題を振り返ることはできます。 しかし、日本がそれを持ち出して、 自らの植民地支配責任と同じ問題であるかのように語ることは、 公正な比較ではなく、責任を曖昧にしようとする論点ずらしです。 また、 それを日本の植民地支配責任と同じ問題であるかのように持ち出すことは、 歴史の比較ではなく、自らの責任を正面から見つめることができていないという告白に近いものです。
結局相手が許すか許さないか 言い換えれば、相手の懐が広いか広くないか それだけ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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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자유지만, 비교는 정확해야 합니다. 일본은 조선을 상대로 35년 동안 식민통치를 했습니다. 주권을 빼앗고, 행정·교육·경제·노동·언어·이름·신체까지 지배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수탈, 강제동원, 인권침해, 문화 말살이 국가 체제로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은 약 9년 동안 참전했습니다. 그것도 한국이 단독으로 벌인 전쟁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한 전쟁 체계 안에서의 참전이었습니다. 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 피해 문제와, 한 나라를 35년 동안 식민지로 지배한 문제를 같은 저울에 올리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전쟁의 양상도 다르고, 피해의 규모도 다르고, 책임의 위치도 다릅니다. 한국이 베트남전 문제를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그것을 들고 와서 자신들의 식민지배 책임과 같은 문제처럼 말하는 것은 공정한 비교가 아니라 책임을 흐리려는 물타기입니다. 또한, 그것을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과 같은 문제처럼 끌고 오는 것은 역사 비교가 아니라,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結局相手が許すか許さないか 言い換えれば、相手の懐が広いか広くないか それだけ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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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환율이나 명목 GDP를 들고 와도,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먼저, 그 돈은 협정문상 ‘배상’이 아닙니다. 경제협력과 청구권 문제의 처리라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령 일본 측 주장처럼 그 돈을 모두 ‘배상금’이었다고 보더라도, 당시 한국 인구로 나누면 무상 3억 달러는 1인당 약 10달러입니다. 유상 2억 달러까지 포함해도 약 17달러입니다. 게다가 그 유상 2억 달러는 상환이 필요한 차관이었습니다. GDP 대비 컸다, 국가 예산 몇 년 치였다, 이런 말은 논점의 전환입니다. 국가 개발자금으로 컸다는 것과 식민지배, 강제동원, 수탈, 인권침해의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구나 당시 한국은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 있었습니다. 국민이 자유롭게 논의하고, 피해자들이 납득해서 합의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습니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거친 인물이며, 해방 이후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의 권력은 민주적 정당성보다 군사쿠데타와 권위주의 통치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런 정권이 일본과 맺은 합의를 근거로 “한국 국민 전체가 납득했고, 피해자들도 모두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주장입니다. 국가 간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과 개별 피해자의 고통이 정당하게 해결되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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ベトナム戦争は、韓国が単独で起こした戦争ではありません。 戦争全体の戦略と作戦の主導権はアメリカが握っており、韓国軍はアメリカが主導した戦争体制の中で参戦した同盟軍でした。 オーストラリア、タイ、フィリピン、ニュージーランドなど、他の参戦国もありました。 それにもかかわらず、この複雑な戦争の責任を韓国だけに一方的に押しつけるやり方は、公平ではありません。 それは歴史への反省というより、政治的な戦術に近いものです。 もちろん、だからといって韓国軍に関する民間人被害の疑惑や責任問題が消え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ベトナム戦争はゲリラ戦だったため、 生きている時点で誰が民間人で、誰がベトコンなのか、 現場で区別するのが難しい場合が多くありました。 実際にベトコン協力者だった人もいたかもしれませんし、 死亡後に民間人被害者として記録された可能性もあります。 しかし、その可能性だけで、 女性、老人、子ども、非武装の住民全体の死を 正当化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 戦争の複雑さは認めるべきです。 しかし、民間人保護の原則まで崩してしまえば、 結局、あらゆる虐殺が言い訳されることになります。 ただし、これを日本の植民地支配問題と同じ次元に置くことは、明らかに違います。 日本は朝鮮を強制的に併合し、 主権を奪い、植民地支配体制を築きました。 ベトナム戦争において韓国は、アメリカ主導の戦争に参戦した国でした。 一方、日本は一つの国の主権を奪い、支配した帝国でした。 韓国にも省みるべきことはあります。 しかし、それが日本の植民地支配責任を薄める道具になってはなりません。
韓国はベトナムに対し金大中・盧武鉉・文在寅政権などで「遺憾の意」を表明されたとのことですが、フォンニィ・フォンニャット事件等の具体的な虐殺認定や公式謝罪、賠償は行われておりません。 また、国内裁判で政府の責任が認められたケースでも上訴されるなど、「過去を直視している」と評価するのは難しい面もあると考え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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