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수잔 손탁'이 파시즘 미학을 "복종을 욕망으로 바꾸는 연금술"이라고 했는데... 시청자는 "그냥 사이다라서 좋았다"고 느끼겠지, "내가 폭력을 정의로 받아들이도록 설득당했다"고는 절대 느끼지 않음. 이 차이가 중요함.
근데 더 흥미로운 건, 손탁이 말한 "개인의 소멸"이 여기선 반대로 작동한다는 거. 원래는 군중(우리 편)의 개인성을 지우는 게 파시즘 미학인데, 참교육류에서는 '악인' 쪽의 개인성이 지워짐.
맥락도 없고 그냥 절대악으로 그려지니까, 거기에 가해지는 폭력은 도덕적 부담이 1도 없음. "내가 옳다 옳은 일엔 폭력 허용된다"는 구조가 가능해지는 게 바로 이 지점.
그리고 마지막. 이 정도로 흥행했는데 거기에 문제 있다고 말하면 "너만 불편한 사람" 되는 분위기. 흥행 규모가 그대로 도덕적 정당성으로 둔갑하는 것.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미학적 방어막이라는 게 정확히 이 현상.
손탁이 보던 건 나치 행진 같은 국가 단위 거대 미학인데, 그 골격이 드라마 한 편에서도 똑같이 돌아간다는 거. 규모만 작아졌을 뿐, 메커니즘은 그대로 재사용되고 있는 것.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보다가 좀 멈칫했음. 파시즘의 냄새가 나서...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보다가 좀 멈칫했음. "내가 옳으니까 폭력은 정당하다"는 논리를 너무 깨끗하게 깔아놓고 있으니까..
근데 이걸 그냥 "자극적인 드라마네" 하고 넘기기엔 좀 아까운 게, 전세계에서 다 통했다는 거. 이건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라 다들 자기네 사법/교육 시스템에 비슷한 불신을 갖고 있다는 신호 같음. 제도가 안 지켜준다는 무력감, 그걸 드라마가 대신 풀어준 거.
근데 이거 보고 정치인들이 갑자기 "교권 추락 심각하다" 하면서 숟가락 얹는 거 보면 좀 웃김. 그게 어제오늘 문제였나...
말죽거리 잔혹사 보면 70~80년대 학교가 어땠는지 나오는데, 그 폭력이 정당화되던 시절 -> 그 반동으로 인권/탈권위화 -> 그게 또 충분히 정착되기 전에 다시 "강하게 눌러야 한다"는 정서로 회귀.
결국 폭력의 문법은 그대로인데 주체만 바뀌면서 계속 돌고 있는 느낌. 이게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 흐름 자체가 좀 신기함.
결국 폭력으로 폭력을 덮는 모습.. 시계추가 양극단을 오가는 모습이 어이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