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로 재직할 시절, 내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스스로를 헌신하며 갈아 넣을수록 나는 더 힘들어져만 갔다. 선배들은 원래 그렇다, 나도 그랬다 (정말 그랬을까), 시간 지나면 좋아진다는 식으로 상황 해결에 미온적이었으며 후배들은 나를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혹은 본인은 절대 할 수 없는 성인처럼 생각하였고 아무도 나의 길을 따라가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졌기에 악마가 있다면 이런식으로 나를 괴롭히는구나라는 생각도 할 정도였다. 자승 자박에 빠진 것처럼.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더 열심히 할 수록 상황이 나를 더 힘들고 고립되고 깊게 옭아메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굴복했고 당장 보고 있던 환자들 곁을 떠났다. 당시에 개인적으로도 이 상황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였고 사회적으로도 이 상황이 지속될 수도 없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필수 의료는 대한민국에서 의료의 질을 유지하며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며 그 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대한민국 필수 의료는 붕괴했다.
병원을 때려치고 이것 저것 해보았지만 결국 제일 잘 할 수 있는 건 소아 환자 진료보고 바이탈 보는 거라 내 전문 분야에서는 떠났을지라도 그냥 독고다이의 자세로 대학병원 소아과 타분과에 봉직하여 환자들을 보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만큼 나의 경험은 결국 사회 시스템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발전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컨빅션을 가진 숏충이, 지옥변곡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것도 어찌보면 바이탈의 저주일지도 모른다.
의료계 선배가 후배들에게 말합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네 인생을 갈아 넣지 마라.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
이 말이 슬픈 이유는
그 끝에 결국 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에는 분명 공공성이 있습니다.
국민이 함께 낸 보험료로
누구나 필요한 치료를 받게 하는 제도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한정된 재정을 어디에 쓸지 따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재정의 우선순위는 흐리고,
부족한 몫은 현장에 떠넘기는 방식입니다.
처음엔 의료진이 버팁니다.
그러다 결국 좋은 의사가 되고 싶던 사람들이
조용히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