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포기와 공소취소>
참 딱하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힘든 경험으로 어려운 공부를 자주 하지는 않는다. IMF, 탄핵, 비상계엄 등이 그랬다. 불행히도, 그런 경험은 모두 위기와 관련됐다. IMF는 외환위기, 탄핵은 헌정위기의 결과였다. 비상계엄은 민주주의 위기를 야기했다. 우리가 드문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위기가 많다는 뜻이다.
요즘 또 어려운 용어가 쏟아져 나온다. 파기환송, 불소추특권, 재판중지, 배임죄, 대법원 법대, 항소포기, 공소취소 등이다. 이런 법률용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위기가 왔다는 뜻이다.
어제 오늘의 문제는 항소포기다. 항소포기와 공소취소는 어딘가 닮았다. 1심 판결 후에 그 판결에 불복해 2심 재판을 요청하는 것이 항소, 그걸 포기하는 것이 항소포기다. 공소취소는 검사가 공소를 1심 판결 전에 철회하는 것이다. 이번 항소포기는 향후 공소취소의 준비 또는 예고편 같다.
대장동 민간업자 김만배 등에 대한 1심 판결 이후 김만배 등은 모두 항소했다. 수사와 재판을 맡았던 검찰은 항소하기로 결정했으나, 마감 7분 전에 포기했다. 항소포기의 경위에 대한 법무부, 대검, 지검의 말이 다르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힘있는 사람들의 거짓말이 일상처럼 많아졌다. 과연 대통령실은 무관할까. 항소포기의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이 가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피고인만 항소하면, 2심은 1심보다 더 불리한 판결을 하지 못한다(불이익 변경 금지). 1심에서 검찰은 김만배 등의 불법수익을 7,888억원으로 보았다. 1심 법원은 473억원만 추징한다고 판결했다. 검찰의 항소포기로 2심 법원은 그 7,888억원을 따지지 않고, 추징액을 473억원 이하로 정한다. 국고가 아니라 범죄인들이 큰 돈을 벌게 됐다.
공소취소는 주로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송금혐의 재판에 대해 거론돼 왔다. 민간 범죄자들은 항소포기로 도와주고, 대통령에 대해서는 1심 재판을 멈춰놓고 공소취소로 재판을 아예 없애려 한다. 법치주의 수난의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