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이처럼 기업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자본 유출의 가장 깊은 기저에는 한국과 미국 간의 역사적인 금리 역전 현상과 그 역전을 장기화시킨 양국 통화 정책의 근본적인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이후 폭발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진압하기 위해 정책 금리를 무려 500bp(5%포인트)나 끌어올리는 살인적인 긴축을 단행한 반면, 한국은행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침체 일로를 걷는 내수 경기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 인상에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 결과 한미 간의 기준금리 격차는 2025년 12월 기준 무려 1.5%포인트까지 벌어졌으며, 이는 과거 어느 시기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42개월 연속 금리 역전이라는 사상 초유의 거시경제적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2026년 1월 18일 들어서 미국의 향후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채권 가격에 선반영되면서 한국의 3년물 국채 금리(3.08%)와 미국 3년물 국채 금리 간의 격차가 0.573%포인트로 좁혀지며 2년 7개월 만에 최소 격차를 기록하는 등 일시적인 안도감이 형성되기도 했으나 , 정책 금리 자체의 절대적인 우위는 여전히 미국이 굳건히 쥐고 있다. 자본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본능적으로 금리가 높은 곳, 즉 기대 수익률이 높은 곳을 향해 무자비하게 이동한다. 위험조정수익률 측면에서 압도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달러 표시 자산의 존재는 국내 기관 투자자 및 개인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내 해외 자산 편입 비중을 기하급수적으로 상향시켰고, 이는 환율 상승의 마르지 않는 동력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환율 붕괴를 가속화한 가장 치명적인 내부 요인으로 지적받는 것은 국내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 기이하게 결합하여 만들어낸 '쌍끌이 유동성 팽창(Twin Expansion)'이 원화의 내재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시켰다는 점이다. 2024년 12월 3일 돌발적으로 발생한 비상계엄 선포 사태(이른바 12.3 내란) 이후 극도로 위축되고 마비된 실물 경제를 응급 처치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2024년 10월부터 약 9개월의 기간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100bp(1%포인트) 인하하는 파격적인 비둘기파적(Dovish) 통화 완화 행보를 보였다. 동시에 이재명 정부는 취임 직후 민생 경제의 즉각적인 회복과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내세우며, 대규모 현금성 지원인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대량 발행과 2025년 매머드급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공격적이고 초광의적인 확장적 재정 정책을 밀어붙였다. 당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도하에 추진된 이러한 전례 없는 확장적 재정 정책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대한민국의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고 국부를 창출하여 글로벌 1등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원년의 마중물이라는 화려한 명분으로 포장되었으나 , 거시경제적 현실은 냉혹했다. 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 폭발이 겹치면서 시중에는 막대한 원화 유동성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초저금리 기조 속에서 누적되어 온 기업 대출의 폭발적 증가세에 더해, 상장지수펀드(ETF)와 수익증권 등 새롭게 집계 기준에 편입된 광범위한 유동성 지표까지 합산되면서, 한국의 광의통화(M2) 증가율은 미국의 두 배 수준인 8.5%에 육박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은행 측은 수익증권을 M2 통계에 포함시키는 한국만의 독특한 통계 편제 방식 탓에 유동성 팽창이 수치상으로 과대 계상된 측면이 있으며, 이를 제외할 경우 한국의 M2 증가율은 5%대 중반으로 미국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적극 항변했으나 , 이미 공포에 질린 외환시장은 이러한 기술적 반박을 수용하지 않았다. 화폐 수량설의 대원칙에 입각할 때 원화 공급량의 상대적인 폭증은 곧바로 원화 가치의 폭락으로 직결되었고, 넘쳐나는 원화 유동성이 꽉 막힌 국내 부동산 규제와 부진한 실물 경제로 스며들지 못한 채 기대 수익률이 높은 해외 증시로 대거 이탈하면서, 정부가 살포한 유동성은 역설적이게도 환율 상승의 영구적인 땔감으로 돌변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