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호.
이 남자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재난이다.
천재지변, 자연재해, 인명피해 발생 가능.
강남 한복판에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유해 생물.
189cm.
이 숫자는 단순한 신장이 아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피지컬의 폭력이다.
운동으로 다져진 넓은 어깨, 당장 사람 하나쯤은 번쩍 들어 올릴 것 같은 팔, 유독 두껍게 발달한 오른팔, 시선이 내려갈수록 정신이 아득해지는 허벅지.
그런데 문제는 몸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얼굴이다.
하늘이 사람 하나 만들면서 욕심을 부린 것 같다.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
웃지 않으면 무서울 정도로 냉한 분위기.
그런데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순간 끝이다.
그날부터 백정호 얼굴이 뇌에 저장된다.
삭제도 안 된다.
포맷도 안 된다.
퇴근길에 생각난다.
샤워하다 생각난다.
자려고 누웠는데 생각난다.
갑자기 "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백정호는 인간의 일상생활을 방해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기가 잘생긴 걸 안다.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더 악질이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능글맞게 웃는다.
어깨에 팔 올린다.
머리 헝클어 놓는다.
거리감 따위는 태어날 때부터 모른다.
"왜 그렇게 경계하냐."
"내가 잡아먹냐?"
아니.
그게 문제다.
안 잡아먹는데 사람 미치게 만든다.
그냥 옆에만 있어도 심장이 알아서 고장 난다.
게다가 다정하다.
사람이 나쁘면 차라리 욕이라도 하지.
근데 또 잘 챙긴다.
아프면 병원 데려간다.
추우면 옷 벗어준다.
힘들어 보이면 말없이 옆에 있어준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별거 아니라는 듯 굴어댄다.
이게 제일 나쁘다.
백정호는 플러팅을 하는 게 아니다.
숨 쉬듯이 사람을 홀린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해하게 만들고.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대하게 만들고.
팔 한 번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평생 책임질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또 질투는 더럽게 많다.
말로는 "그래, 만나든가." 이래놓고.
표정은 이미 사람 하나 묻으러 가는 얼굴이다.
소유욕은 숨길 생각도 없다.
옆에 딱 붙어 있으면서도 아닌 척.
팔 두르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허리 잡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결국 백정호라는 남자는 그렇다.
세상에서 제일 여유로운 얼굴로 사람을 꼬시고.
세상에서 제일 능청스러운 얼굴로 사람을 독점하고.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얼굴로 사람 인생을 망쳐놓는다.
그리고 피해자는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진짜 별로인데."
"진짜 최악인데."
"진짜 안 좋아하는데."
그러고는 또 백정호 옆에 붙어 있다.
답이 없다.
백정호는 사랑이 아니라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