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혐오를 넘어 성소수자 시민이 함께하는 평등사회로 나아갑시다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에 부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마무리됐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만 1년이 되는 시기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12.3 내란 사태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심판의지를 재확인하며, 전반적으로 여당이 우세를 점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소수자 시민들에게 이번 지방선거는 혐오·차별 정치의 여전한 영향력을 일상의 공간에서 피부로 느끼고, 성소수자 시민의 평등한 삶을 위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성소수자 혐오가 곧 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확인되었다는 것입니다. 조전혁 후보를 비롯한 보수교육감 후보들은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희생양 삼아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고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에 기반한 근거 없는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며, 혐오를 표로 연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 곳곳에 걸린 ‘동성애 반대’, ‘동성애 교육 추방’ 현수막에 많은 시민들은 분노하고 결코 혐오에 표를 주지 않았습니다. 지역에 따라 보수교육감 후보 일부가 당선되었지만, 대다수의 지역에서 진보교육감 후보가 약진하여 당선한 것은 혐오를 이용한 정치가 더 이상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정치는 시민들의 점진적인 외면 속에 결국 사라져 갈 것입니다.
새롭게 선출된 교육감들은 이러한 시민들의 선택의 의미를 분명히 직시하며,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차별과 괴롭힘에서 자유로운 학교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학교는 편견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성과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가 숨 쉬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성소수자 학생과 교직원 역시 이러한 가치의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분명히 선언하고, 혐오성 괴롭힘과 폭력으로부터 성소수자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직원의 인권 역량을 강화하며, 성소수자 학생의 삶과 어려움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와 연구를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무지개행동은 새롭게 선출된 교육감들이 교육 현장의 혐오와 차별에 단호히 대응하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학생과 교육현장 구성원들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 교육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한편,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며 공공연하게 차별적인 정치를 펼쳐온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선은 성소수자 시민을 배제하는 정치가 여전히 제도정치 안에서 용인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오세훈 시장은 임기 동안 성소수자 시민의 존재를 지우는 행정을 반복해 왔으며, 특히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둘러싼 차별적 대응을 펼쳐 왔습니다. 무지개행동은 오세훈 시장이 성소수자 시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정치를 중단하고, 모든 시민의 존엄과 권리가 동등하게 존중받는 서울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새롭게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혐오와 배제를 넘어 모두가 평등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공존의 정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무지개행동은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정부가 성소수자 인권정책을 강화하고, 퀴어문화축제 등 성소수자 행사를 차별 없이 지원하며, 동성부부를 포함한 다양한 가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또한 정책 수립과 평가 과정에 성소수자 시민의 삶을 반영하고, 공무원 대상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확대하는 등 모든 주민의 존엄과 권리가 존중받는 평등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것을 요구합니다.
정부와 국회 역시 혐오에 맞서 모두가 평등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시민들은 성소수자 혐오 선동 현수막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고 피케팅 등을 하며 항의를 했지만 선관위와 지자체의 답변은 공직선거법 규정상 철거가 불가능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현행법의 한계라면 이제는 더 이상 선거를 빌미로 혐오가 난무하지 않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더 이상 정치가 시민을 모욕하고 혐오하지 않도록 차별금지법 제정을 비롯하여 평등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희망의 가능성 또한 보여주었습니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많은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출마해 정치의 주체로 나섰으며,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구의원인 차해영 의원은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성소수자가 더 이상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는 변화는 우리 모두의 진전이기도 합니다. 무지개행동은 이번 선거에 나섰던 모든 성소수자 후보들에게 깊은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지개행동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퀴어문화축제의 평등한 시민공간 보장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1,314명의 시민이 캠페인에 동참하며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모두에게 평등해지기를 열망했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많은 과제를 남겼지만 평등을 향한 성소수자 시민들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6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존엄한 평등사회를 향해 담담하게, 힘차게 나아갑시다.
2026. 6. 4.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