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은 물이다. 물은 흐른다.어디로 흐르느냐는 그릇이 정한다. 그릇 없는 물은 바닥에 스며 증발하고, 그릇이 누구 것이냐는 물은 모른다. 흐르기만 한다.
미국이 그 그릇을 잡았다. Palantir Ontology다. Army 계약만 $10B이고, Maven에 $1.3B이 들어갔다. DOGE가 쓰고 IRS가 쓰고 ICE가 쓴다. Claude를 넣어도 되고 GPT를 넣어도 되는데, 모델은 교체 가능한 부품이고 그릇은 그대로다.
$10B는 값이 아니라 족쇄다. 규모는 곧 의존성이고, 의존성은 교체 불가능성을 만든다. Palantir이 국가에 묶였고, 국가도 Palantir에 묶였다.
Army가 AI로 표적을 선정했을 때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국회에서 묻는다. “왜 이 표적이었나.” 답은 GPT가 아니다. 답은 Claude도 아니다. 이 데이터, 이 알고리즘, 이 결정 과정이 답이다. 이 기록이 없으면 책임을 못 진다.
Ontology는 답이 아니라 기록이다. 모델은 결과를 말하고, 기록은 왜 그 결과였는가를 말한다. 국가는 결과보다 왜가 더 중요한데, 왜가 없으면 전쟁이 아니라 살인이 되고 정책이 아니라 재난이 된다.
그래서 모델은 교체 가능한 부품이고, 그릇은 그대로고 기록도 그대로다. Morgan Stanley는 모델을 commodity로, Ontology를 moat라고 봤다.
중국도 그 그릇을 잡고 있다. 알리바바 Apsara는 데이터센터를 하나의 컴퓨터로 만들고, 바이두 Baige는 NVIDIA 칩이든 화웨이 칩이든 한 OS 안에서 조율한다. 화웨이는 칩부터 MindSpore 프레임워크까지 수직통합이고, 중국 정부가 30개 도시에 지능형 컴퓨팅 센터를 지으면서 바이두 화웨이 알리바바를 국가대표팀으로 묶었다. 표준은 정부가 먼저 잡는다.
미국은 데이터의 흐름을 그릇으로 잡았고, 중국은 칩과 컴퓨팅 센터라는 물리적 그릇을 국가가 통제한다. 그릇의 재료가 다른데, 둘 다 주인은 국가다.
서방은 어떤 모델이 더 똑똑한가를 전쟁으로 보지만, 중국은 어떤 그릇이 더 많은 모델을 삼킬 수 있는가를 전쟁으로 본다. 그릇이 커지면 모델은 그 안에 들어가게 돼 있다.
Anthropic은 그릇이 없었다. 모델만 팔았고, 안전을 팔았다. 로비에 $3.1M을 썼고, 규제를 설계했으며, 안전이 브랜드가 됐다. 모델은 있었지만, 어디에도 고정되지 않았다. 배포는 플랫폼에 의존했고, 통제권은 밖에 있었다.
3일이었다. 6월 9일 Fable 5를 출시했고, 12일에 차단됐다. 안전을 판 사람이 안전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규제를 설계한 사람이 그 규제에 가장 먼저 걸렸다.
IBM이 그랬다. 1960년대 System/360이 그릇이 됐는데, 주정부 89%가 아직도 IBM 메인프레임을 쓴다. 바꾸려면 전체를 뜯어야 하고, 60년간 쌓인 기록을 옮겨야 한다. 그 비용이 기록의 값이다. 그릇은 교체하지 않는다.
Palantir이 그 자리로 가고 있다. 화웨이도 그 자리로 가고 있다.
모델 전쟁이 아니다. 그릇 전쟁이다. 그릇을 가진 기업은 포획되고, 그릇이 없는 기업은 배제된다. 어느 쪽이든 경계 밖은 없다. 둘 다 국가가 이긴다.
국가는 물을 모른다. 그릇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