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내게 ‘극우’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시도들이 제법 잦아졌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을지 몰라도 여러번 듣다보니 이제는 솔직히 말해 타격감도 전혀 없고, 좌파가 말하는 극우라면 그다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길을 걷다 날벌레가 부딪혔다고 해서 상처를 입지는 않는 법이니까.
그러나 나름 글밥을 먹고 산다는 사람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하게 오염되고 남용되는 이 단어의 용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거 아닌가. 한 번쯤은 그 언어의 해부학적 구조를 차갑게 분해해 줄 필요성을 느낀다. 저들이 반사적으로 뱉어내는 극우라는 말이 얼마나 비 논리적이고 "사돈 남말하는"이야기인지 알려주긴 해야할 것 같다.
교과서를 펼쳐 정치학이 규정하는 극우의 뼈대를 건조하게 발라내 보자.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종족주의, 그리고 개인을 억압하며 전체를 통제하려는 파시즘. 이 두 가지가 극우를 구성하는 핵심 DNA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학적 잣대를 2026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들이밀었을 때 완성되는 블랙코미디. 이 땅에서 저 극우의 정의와 조건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집단은, 다름 아닌 스스로를 좌파라 칭하며 여의도와 광장을 장악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첫째, 극단적 종족주의다. 글로벌 시대에 툭하면 죽창가를 부르며 철 지난 반일 감정을 선동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맥주 한 캔, 셔츠 한 장을 두고 토착왜구라며 사상을 검증하던 그 집단적 광기를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반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무기로 목덜미를 겨눠도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낭만적 면죄부를 발행한다. 심지어 역사적 팩트는 내동댕이친 채 사이비 사학인 환단고기를 국무회의에 들이밀던 사람이 누군가? 피와 핏줄에 집착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가 우파에 있긴한가?. 거기에 더해 타 집단은 물론 자신들 내부에서도 매번 차이를 인정못하고 맹목적으로 배척하는 이 야만적인 부족주의를 극우가 아니면 대체 무어라 부를 것인가.
둘째, 파시즘과 전체주의다. 파시즘의 본질은 이성의 마비와 맹목적인 총통 숭배다. 지금 이재명이라는 사법 리스크에 갇힌 권력자 단 한 명을 호위하기 위해, 저들이 어떻게 국가 시스템을 난도질하고 있는지 보라.
주군의 범죄 혐의를 세탁하려 공소취소를 시도하며 법치를 조롱하고, 당내의 이견은 수박이라 낙인찍어 린치하며 정치적 무덤으로 밀어 넣어왔다.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며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국가 기관을 동원해 일상을 통제하려 든다.
1930년대 나치스나 무솔리니의 흑셔츠단이 보여주었던 폭력적 일사불란함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완벽한 아시안 버전으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성이 마비된 채 도덕적으로 파산한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집단. 남이 씌운 극우라는 껍데기를 벗겨내면, 그 안에는 뼛속까지 전체주의로 무장한 진짜 파시스트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 기막힌 인지부조화의 연장선에 이른바 친일 프레임이 있다. 나를 향해 친일파라 손가락질하는 자들에게 건조한 팩트 하나를 일러주자면, 나는 유럽은 여러 번 갔어도 일본 땅에는 아직 발끝 한 번 디뎌본 적이 없다. 무지성적 반일 감정을 일종의 집단적 정신증이라 여겨 경멸할 뿐이다. 일본의 침략을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외부의 도둑을 욕하기 전에 우리가 뼈저리게 복기해야 할 것은, 총성 한 번 제대로 울리지 못하고 나라의 문서를 통째로 넘긴 무능한 조선의 권력층이다. 내부의 썩어 문드러진 기둥은 외면한 채 오직 외부의 적만 탓하는 것은 비겁한 지적 도피다.
내가 진정으로 경멸하는 것은 좌파 특유의 얄팍하고 납작한 역사관이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35년을 오직 채찍에 맞고 눈물만 흘리던, 시대에 순응한 불쌍한 노예들의 시간으로만 박제하려 든다.
기록을 보라. 당시에 매년 20만에서 30만 건의 형사고소가 빗발쳤고, 3만 건의 민사소송이 쏟아졌다. 이것이 무엇을 증명하는가. 우리 조상들은 그저 웅크리고 당하기만 한 무기력한 바보들이 아니었다. 식민지라는 억압 속에서도 조선시대에는 상상도 못하던 근대적 사법 제도를 활용해 권리를 주장하고,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법리를 다투던 역동적인 주체들이었다. 이 치열한 생명력의 역사를 가련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강제로 쑤셔 박는 짓이야말로, 혹독한 시대를 견뎌낸 조상들에 대한 가장 오만하고 악랄한 모독이다.
이들의 지적 게으름은 친미라는 딱지를 붙일 때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내가 미국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가. 대답은 늘 노(No)다. 백악관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동맹을 돈줄 취급할 때면 나 역시 화가 나고 짜증이 솟구친다. 하지만 국제 정치라는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자. 안보의 우산 아래서 꿀을 빨면서, 입으로는 제국주의라며 돌을 던지는 이중성. 받을 것은 다 받으면서 고마움은 까맣게 지워버리고 등 뒤에서 험담을 일삼는 뻔뻔한 집단과 대체 어느 국가가 파트너십을 맺고 싶어 하겠는가.
누가 국가의 자존심을 굽히고 사대를 하라 했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비굴한 맹신이 아니라, 받은 것은 받았다, 고마운 건 고맙다고 인정하는 최소한의 염치와 국제 사회의 냉혹한 거래 규칙을 직시하자는 상식일 뿐이다. 팩트를 들이밀면 친일로 몰고, 상식을 말하면 친미로 패를 가르는 이 지겨운 흑백논리. 억울한 피해자라는 달콤한 환상에 취해 과거의 상처만 파먹고 사는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진정한 독립과 자주는, 우리 조상들을 나약한 바보로 깎아내리거나 동맹을 향해 떼를 쓰는 징징거림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는 서늘한 이성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니 앞으로 그들이 거품을 물고 극우 타령을 하거든, 당황하지 말고 가볍게 비웃어주면 된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끔찍한 극우는,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핏대를 세우고 있는 바로 당신들의 쌩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