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돌아가는 번듯한 대낮이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도열한 서울경찰청 한복판에서 경찰 간부가 보좌진의 손목을 비틀고 목덜미를 낚아챘다. 1980년대 흑백 필름 속 백골단의 부활을 보는 듯한 이 기시감 넘치는 장면은 놀랍게도 2026년 대한민국의 실황 중계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선거의 절차적 하자에 항의하러 온 야당에게 경찰이 화답한 방식은 대화가 아니라 거친 물리력이었다.
한국 좌파는 늘 국가 폭력의 숭고한 피해자를 자처하며 도덕적 우위를 독점해 왔다. 그들이 써 내려간 거룩한 민주화 서사 속에서 경찰의 공권력은 언제나 청산해야 할 절대 악이자 군국주의의 잔재였다. 그런데 그들이 권력을 잡자 참으로 흥미로운 마술이 펼쳐진다. 국민을 지키라던 민중의 지팡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재명의 심기를 경호하는 사병의 몽둥이로 진화했다.
서울경찰청장의 언어에서 이미 이상한 감이 왔었다. 시민들을 향해 그는 패가망신할 수 있다고 서늘하게 경고했다. 이것은 법치주의 국가 공무원의 언어가 아니라, 구역을 관리하는 조직폭력배의 화법이다.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권자에게 법망이 아닌 공포를 들이미는 이 노골적인 협박은 그들이 과거 그토록 혐오하는 '척' 하던 독재 정권의 매뉴얼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한다.
왼쪽으로 쓰러지면 숭고한 투쟁이고, 오른쪽에서 항의하면 패가망신을 시켜야 할 폭동이 되는 지독한 이중잣대의 완성이다.
우리는 이 기괴한 활극 이면에 숨겨진 진짜 메시지, 즉 부재의 팩트를 읽어야 한다. 야당 의원이 눈앞에 있고 수많은 언론의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리는 현장에서조차 경찰은 폭력을 숨기지 않았다. 이것은 우발적 사고나 감정 통제의 실패가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공포의 전시다. 배지를 단 국회의원의 보좌관 목덜미도 이렇게 손쉽게 틀어쥐는데, 뒤에 숨을 곳 하나 없는 일개 국민이 거리에 나오면 어떻게 짓밟아줄지 상상해 보라는 국가 폭력의 예고편인 것이다.
군부 독재와 싸웠다는 자들이 결국 가장 완벽한 전체주의의 문법을 복제해 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음습한 지하실은 이제 필요조차 없다. 이재명 치하의 경찰은 광장 한복판과 경찰청 로비에서 백주대낮에 남영동을 훌륭하게 구현해 낸다. 반대파의 입을 틀어막고, 절차를 묻는 시민에게는 파멸을 약속하는 참으로 우아한 블랙코미디다.
권력에 취해 이성을 잃은 공권력에게 시민을 위한 치안을 묻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지금 정권 보위라는 거룩한 성전을 수행하느라 몹시 바쁘다.